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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 27: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눅 23:46).  십자가는 비워졌고, 무덤이 주님의 시신으로 채워졌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주님을 위한 한 가지 할 일이 남았습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 하는 마지막 것입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 날 동틀 무렵,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이 치워지고, 그 돌 위에 천사가 앉아 있습니다. 천사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 .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눅 24:5b-7) 그 여자들은 무섭기도 하고, 너무 기쁘기도 합니다.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주님을 만날 것이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극의 막이 다시 오릅니다. 제 2막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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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일까요? 갈릴리에서 여기 예루살렘까지 긴 여정이었는데, 그 지저분하고 가난한 시골 갈릴리에서 여기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로 왔는데. 왜 다시 갈릴리로 가라고 하실까요?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다가와서 절하며, 무엇인가를 청하였다. 21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여자가 대답하였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마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서 20:20-22)  

 

“우리는 주님의 잔도 마실 수 있고, 주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물론 제자들은 주님께서 먼저 실패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골고다 언덕 거기 비워진 십자가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무덤만 죽은 사람의 시신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다시 살아나셨다 합니다.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셨다고, 거기서 주님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갈릴리일까?  

 

빈 무덤과 부활. 그러나 빈 무덤 그 자체는 부활의 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진 못합니다.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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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자들이 가는데, 경비병 가운데 몇 사람이 성 안으로 들어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하였다. 12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병사들에게 은돈을 많이 집어 주고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갔다' 하고 말하여라. 14 이 소문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에게 아무 해가 미치지 않게 해주겠다." 15 그들은 돈을 받고서,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리고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마 28:11-15) 

 

사실 빈 무덤 그 자체가 부활의 직접 증거는 아닙니다. 믿음의 증거도 아닙니다. 복음의 결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의 결말, 믿음의 여정의 결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안는 증표이며, 실패하고 길을 잃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그래서 부활을 확증합니다.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는 질문에, 네 마실 수 있습니다 하며, 주님을 예배합니다. 그러나 또한 의심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긴 여정을 마치셨는데, 제자들은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은 길을 잃었고, 이제 겨우 주님에 의해 발견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 ‘무덤가 혹은 예루살렘으로 가라’가 아니라,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주님을 만날 것이다’ 라고 할까요? 주님은 제자들이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곳, 그들이 처음 주님을 만났고 주님의 부름을 받은 곳, 복음을 처음 들었고, 그래서 새 하늘 새 땅에 대한 꿈을 꾸고,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품었던, 가슴이 벅차 올랐던 거기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선교가 시작되었던, 이제 모든 나라와 민족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선교가 시작될 거기, 거기서 제자들은 주님의 동역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결정적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실패했고 또 거부했던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가족의 관계를 먼저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그런 후 그들은 비로소 주님의 잔을 마실 수 있고, 마실 것이고, 주님의 십자가와 자기의 십자가를 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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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그들은 예배했고 또한 의심합니다. (마 28:16-17) 아직 그들은 부족합니다. 주님께서 계신 거기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꾸짖지 않으시고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에게 큰 사명을 맡기십니다. (마 28:18-20)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나라와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입니다. 예배하고 그러나 의심하는 그들에게 주십시다. 완전하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은 그들입니다. 사실 주님은 그들이 완전하고 거룩해서, 제자로서 그 사명을 훌륭히 해낼 수 있을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길을 잃은 사람들이었고, 주님을 실망시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그들을 찾으셨습니다. 잃어버렸으나 다시 찾은, 실망을 주었고 실패를 했던 그들을 용서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못박혀 달리신 그 십자가, 묻히신 그 무덤이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의 드라마의 끝이 아닙니다. 그들이 몸과 마음과 영으로 써가야 하고 채워가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야기와 드라마의 시작입니다. 일상에서, 가족과 친구와 이웃 가운데서,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시고 주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그래야 실천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자도/제자의 길이란 단지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하신 일을 다룬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고, 신학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고, 제자 훈련 코스를 밟는 것이 아니고, 영성관련 책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내 이웃이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여정을 마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아닙니다. 우리가 달려가야 할 경주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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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 . 17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빌립보서 3:12-14, 17)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맡겨 주신 경주를 달려가야 합니다. 오라고 부르신 그 언덕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를 참여하라 부르신 주님의 드라마에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합니다. 갈릴리는 지금 여기 우리가 있는 곳입니다. 갈릴리는 우리가 있는 시간이고 장소이고 또한 주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우리가 제자로서 제자의 길을 살아내야 하는 곳이고 또한 제자를 만들어야 하는 곳입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우리는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민족입니다. 우리가 바로 민족이며, 여기 밴쿠버가 바로 그 모든 민족이 모이는 곳입니다. 여기 UC가 바로 그 모든 민족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부활의 삶을 살아내는 우리 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 살아 계십니다. 교회는 성령을 통해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이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이며, 교회는 또한 하나님 나라의 보이는 표현이고,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입니다. 제자라고 하는 것은 무슨 타이틀이나 신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며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제자도 혹은 제자의 길은 부활을 살고 하나님 나라를 사는 총체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10: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32 여러분은 유대 사람에게도, 그리스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교회에도, 걸림돌이 되지 마십시오. 33 나도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내가 내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고린도전서 10:31-33;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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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천 년간 자기의 신앙과 신앙의 삶을 통해 보여주었던 신앙인들에 의해 빈 무덤은 부활을 확증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가 그것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내가 믿음 안에서 하는 것이 빈 무덤의 증거입니다.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 . 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마 25:34-36, 40)

“그리고 너희가 바로 빈 무덤의 증거이며, 너희가 바로 나의 부활의 증인이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으로 사람들은 네가 누구인지, 네가 무엇을 믿는지, 빈 무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활이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의 말씀과 명령을 가르치고 또한 그것을 실천하는 것,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돕는 것. 서로의 손을 그리고 서로의 옷소매를 그리는 것입니다. (-> Drawing Hands, M.C. Escher, 1948)

제자의 길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서로와 사이, 그리고 서로를 넘나들며 서로의 자리와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제자로 만들어가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을 넘어 실천하고, 교회 안을 넘어 밖으로 이웃으로 온 세상으로 향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온 삶을 통해 보다 훨씬 큰 그림, 즉 그리스도 예수의 얼굴을 그려야 합니다. (-> Painting in the lobby of Regent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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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하고, 그러나 의심하는 우리는 완전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길을 잃고, 그러나 발견된 우리, 그리고 교회가 그런 우리가 모인 곳입니다. 여기 우리가 모든 민족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나라와 민족 출신입니다. 그리고 여기 제자로 부름을 받았고 또한 모든 나라와 민족을 제자로 만들라는 사명도 받았습니다. 한 지붕 아래 모인 우리입니다. 한 지붕 세 가족을 넘어 모든 민족이 한 지붕 아래 모인 한 가족 공동체입니다. UC의 비전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비전을 품고 그 길을 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경주를 함께 달려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여기 우리가 불러야 할, 그리고 삶으로 살아내야 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새 노래입니다.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시편 133)

 

우리는 길 위에 있습니다.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 주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이고 또한 그 길을 함께 걸어가실 것입니다. 한 지붕 세 가족 공동체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며 함께 달려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3)